지난해 초 일본 국민들은 NHK의 한 프로그램을 보고 큰 충격에 빠졌다. ‘무연(無緣)사회:무연사 3만2천명의 충격’이라는 다큐멘터리였다.
이 책은 일본에서 심각한 사회문제로 등장한 무연사회의 원인을 분석하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종교학자다. 도쿄대학 박사과정(종교학)을 수료한 뒤 일본여자대학 교수를 거쳐 도쿄대 첨단과학기술센터 객원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죽음을 중요한 주제로 연구하는 종교학자 답게 저자는 무연사회를 공포스럽게만 받아들일 게 아니라고 조언한다. 현대인의 미래상으로 인정하고 이를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직장(直葬:장례없이 화장하는 것)이 늘어나는 등 장례 절차가 간소해지는 것도 당연하다고 설명한다. 과거엔 전쟁이나 병으로 일찍 죽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그 혼을 달래기 위해 장례나 제사가 강조됐지만 보통 80~90대까지 사는 요즘엔 이 같은 전통이 퇴색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임종을 지키는 가족이 많던, 쓸쓸히 혼자 죽던 모든 죽음은 본질적으로 무연사라고 말한다. 이 때문에 동양종교에서는 오히려 무연사를 강조한다고 한다. 힌두교와 불교의 발생지인 인도에선 생의 마지막 단계로 가정과 재산을 모두 버리고 무일푼으로 방랑하는 ‘유행기’를 두고 있다. 떠돌다 홀로 죽는 무연사를 권장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중병에 걸려 무연사 직전까지 갔던 경험이 있다. 그는 또 도쿄 지하철 가스테러를 일으켰던 옴진리교를 옹호했다는 비난에 휩싸여 대학 교수를 그만두는 ‘사회적 죽음’을 겪었다.
“무연사회는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자유롭고 가능성이 많은 사회다. 우리는 앞으로 무연사회를 살아가야 한다. 미리 각오를 다진다면 죽음에 대한 공포도 사라질 것이다.”
지난해 서울에서 연고자 없이 사망한 ‘고독사’ 가 174명으로 집계됐다. 아직 한국의 무연사는 일본에 비하면 아주 적은 수준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도 바로 옆집에 사는 사람의 죽음도 발견하지 못하는 ‘무연사회’로 급격히 변화할 가능성이 높다. 저자의 무연사회에 대한 접근법은 점점 일본사회를 닮아가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철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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