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우그룹 회장 김우중을 공항에서 우연히 마주쳤는데 순간 옛 생각이 파노라마 처럼 흘렀다.

한국인이면 다 알아 보기에 많은이들이 인사를 하였고 조용히 머리만 숙이는 답례로 대체하면서 지나가는데 그의 머리와 눈썹은 이미 서리가 가득하였다.

나도 80년도 후반 90년도 초반에 해외지사 근무를 하면서 많은 추억을 가지고 있고 침대 아래에 칼을 감추고 살 정도로 두렵기도 하였지만 김우중은 얼마나 많은 추억과 애환 애증을 가지고 있을까?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라는 책에서 느끼듯 세계 경영의 선도자이기도 하고, "안되는것은 되게하라" 재계의 일벌레이기도 하였고, 1년에 200일을 해외 현장에 근무 하면서 현장경영을 하였으며, 재계 자산 순위2위 기업을 만들었던 그가 이미 힘을 잃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면서 대우를 다시 생각해 본다.

 

김우중은 술도 못하고 골프도 못한다. 일 때문에 배울 시간이 없었다한다. 그가 수술을 하고 병원에 입원 한 5일이 사업을 시작한 이후 딱 한번의 휴가라고 한다. 그의 취미는 일이었다.

 

IMF가 지난지 벌써 14년이 지나가고 있지만 대우의 미스테리는 아직 안 풀린다.

부도가 나고 해외로 사실상의 도피를 하는데도 김대중정부는 출국을 막지 않았다.

IMF때 빅딜과 기업을 정리하면서 김대중 정부가 대우와 김우중이를 희생양이 만들어 버렸다는것을 부정할수는 없을것이다. 개인적으로 김대중 정부와 악감정은 없지만, 정치 노선상, 재경계의 이해관계상 어쨌던 희생당한게 분명하고 혜택을 본것은 기어자동차, 한보철강, LG반도체등을 인수한 현대가인것만은 틀림없다.

대우의 파산으로 국가의 경제적 손실은 당시 환율로 62조원이였다하니 과히 천문학적인 숫자다.

 

대우는 고 박정희 대통령이 지방 방문중에 우연히 발견한 작은 공장이었다고 들었다.

그후에 대우는 정부의 도움도 받았겠지만, 처음부터 정권의 도움을 받았던 기업이 아니었다. 김우중은 자서전에서 자신은 대우를 국제금융기업으로 키우는게 꿈이었지만 사세를 키워나가는 과정에서 정부의 요청으로 여러 부실기업을 인수하게 되는데 여기에는 고려피혁, 쌍미공업, 동양증권, 옥포조선, 신진자동차, 대한전선 등이 있다. 이런 부실기업을 대우의 계열사로 편입 시키고 경영상태를 고쳐나가는 과정에서 많은 시간이 들었는데, 이건에 대해서도 일부는 대우가 정부의 혜택을 받아 몸집 불리기에 성공했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업은 부실기업이었고 당시에는 정부가 IMF때 처럼 공적자금을 대 줄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는것을 왜 간과하는것일까? 여하턴 박정희 정권부터 혜택을 받았음에도 "희생" 당하고 있었던것이었다.

 

당시 동구권에 가면 대우는 거의 유일무이한 외국계 투자 기업이었다. 북한을 포함한 공산국가들에 이미 김대중정부가 남북대화를 평화적으로 시도하기전부터 김우중은 맨몸으로 뛰어 들었다. 지금은 대우가 개척해 놓은 구 공산권에 전세계가 달라 들어 돈을 벌고 있다.

베트남에 호텔을 지었고, 우즈베키스탄에서는 국민기업이 되어 아직도 카리모프가 김우중을 쫓아 다닐 정도고, 프랑스에 많은 대우 자동차를 팔기도 했다. 작년에 가본 인도에는 끝도 보이지 않는 대우자동차 공장이 녹슬고 있다.

자신이 하는일이 국가 전체에 걸려있는일이라 생각하고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뛰었던 사람이 김우중이다.

 

김우중의 눈물은 두번 화제가 되었다.

처음은 법정에서 눈물을 보였는데, 수년만의 행방이 묘연하던 김우중씨가 다시 한국땅을 밟은지 1년여 만에
지난 사안에 대한 재판장에 서게 되었고, 넓은 법정에 시작과 함께 나타는 김우중씨는 링거병을 주렁주렁 매단 지친모습으로 등장해 묵묵히 자신의 죄목에 대해 열거하는 검사와 이를 변호하는 변호인단 사이에 자리를 지키다 끝내 김우중씨가 눈물을 흘리게 되었다.
두번째는 연초에 대우 창립 44주년 기념식이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린것을 가지고 화제가 되었었다.

과연 그의 눈물에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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