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바위소나무
등산은 도박인 것이다.
인간의 내면이 가지는 밝은부분이 아니라 어두운 부분인 것이다.
인간은 빵만으로 살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빵으로 대변되는 현실적 가치관으로 사는 인생이나 사회는 곧 쇠약해지고 만다.
거기에 반해 비현실적이며 일상성을 뒤 엎는 일들...
곧 도박 혹은 종교 예술 기타 형이상학적 모든 추구
혹은 각종 축제나 놀이등으로 분출되는 것들은
물질만을 추구하는 인간들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스트레스의 해소는 삶에 활력소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등산과 도박으로 깊이 맛들인 자의 경우를 한정해 말하면,
가령 도박의 최고봉은 아다시피 러시안 룰렛게임이란거다.
판돈을 걸고 리벌버권총에 탄알 한 발만 넣고 빙그르르 돌려서 이마에 대고 쏘는 도박이다.
이런 도박의 최고경지인 묻지마 도박의 결과는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다.
어떤 사람이 히말라야에서 말할 수 없는 각종 고행을 통해 등산을 하지만
그 등산이 과연 현실적인 것인지....
바로 이 비현실성이자 일견 쓸데없는 놀이를 쫒는 일에 사람은 매력을 느끼고,
또 러시안룰렛게임을 그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은 눈을 호등그리 뜨고 집중하고
산악인들이란 사람들은 대중의 시선을 집중시켜 왔던 것이다.
이같이 인간이 가진 공동환상의 장르에 그것이 상식을 벗어난 것임을 잘 암에도 매력과 유혹을 느끼는 것은
바로 그것이 비현실성이요, 일반상식을 벗어난 사이코적 요소가 있기 때문에
더 자극적이고 사람을 도취시키고 흥분시키고 열광시키는 심리가 각인에 내재해 있을 것인데
그와 아울러 동물과 달리 인간은 언제나 섹스를 놀이처럼 행할 수 있게 진화되어온 것이다.
각설하고ㅡ,그런데 다른데는 말고 소위 종교의 최고 우상이자
저 현실적 이성적 눈으로 봐서 러시안 룰렛게임의 최강자가 있으니 예수와 붓다이다.
예수는 잘 아다시피 스스로 도박을 감행해 예루살렘에 들어가 피의 축제를 직접 시연한 분이고,
붓다는 정치적 사회적 상황이 달랐으나 히말라야로 쏙 들어가 죽음의 경지를 여러번 드나든 사람이다.
젊은 나이에 자진하여 만인이 보는 앞에서 룰렛게임에 참여해 피를 흘렸으니 그렇지 않은 붓다에 비하면
가히 사람을 흥분시키는데 필수적인 선혈이나 극심한 고통이 동원된 드라마틱한 요소는 훨씬 강하다.
그리고 붓다 역시 장수했지만 극한상황에 여러번 도전했다 살아 온 사람으로
그런 십자가형 못지 않은 고행을 이겨 낸 사람으로 묘사되어 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만약 등산의 최고봉 산악인의 자리를 꿈꾸는 풍부한 사람이라면
대사 일번이며 절벽 끝에서 손을 뿌려버리는 자기를 드러내는 정도의 배짱이 있어야한다.
그냥 관전하는 제자나 개평꾼의 입장이라면 그 도박판에 끼일 필요는 없지만....
무엇이든 정면으로 자기를 말하고 독특한 자기 사상과 방편을 설파하는 것이 스승답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무위자연의 사람으로 산천을 벗하여 살면 될 것이다.
내가 보기에 한국에는 어디에도 러시안 룰렛같은 궁극에 만나는 절벽의 끝인 절대무(絶對無)의 도박판을 벌려 자기를 이겨 낸 스승은 없고 그저 약간의 풍월과 재치 지혜를 개발한 정도에 불과하다고 본다.
평범한 보통 사람의 육안으로 보자면 예수와 부처는 틀림없는 사이코의 원조이다.
두 사람 다 있지도 않을 절대무(絶對無)의 비현실적 세계에 도전해 사람들의 뇌리에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그런 산악인이 있다면 나도 그 등산판에 끼여 한 게임하고 싶은 충동질도 있다.
그저 평범한 산악인 중의 일원이 아니고
산악판 지존의 자리라는 것은 인위적으로 해 봐야 사람의 영혼을 가지고 장난치는것 밖엔 아니다.
진정한 자기 목소리로 영원한 승부를 시도하는 러시안 룰렛의 달인이라야 가능하다.
그 러시안 룰렛 게임이란 것은... 절대무를 이겨낸 저 세상의 눈빛
표상으로 이미지로 받아들여지는 그의 글이나 말이 아니라
남녀노소 초목산천 금수가 보아도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살아 있는 신성한 눈빛을 말한다.
그가 바로 자기로부터 자유로와진 사람이 산악인이다.
또한 산악판 무림을 정법으로 통일할 무림 최고수라 칭해질 자격이 있다할 것이리라.
그러나 요즘 산악연맹작태를 보면 산악인양성보다도 스포츠인양성에 열을 더 올린다.
그들이 산악인을 스포츠인으로 전락시키는데 일조하는 것이다.
세상살이가 경쟁이 불가피한 것처럼 보이고 그런 착각때문에 종교계가 기복화되고, 종교인에서 직업인으로 순수성이 오염되고 왜곡되듯이 산악계가 산악인에서 스포츠인으로 타락하게 되어지는 것이다.
산악연맹이 앞서서 비현실성인 산악계를 현실성인 스포츠계로 탈바꿈 변화에 앞장서는 것이다.
그들이 깔아야 할 마당이 현실성 사회의 경쟁 스포츠대회가 아니라 비현실성 사회의 룰렛게임이다.
스포츠대회로 사람을 도취시키고 흥분시키고 열광시키는 것이 아니라 룰렛게임이어야 한다.
예수와 붓다처럼 스스로 룰렛게임에 참여하여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고 히말라야에서 죽음의 경지를 여러번 드나든 사람처럼 알파인등반으로 암벽과 빙벽의 벽을 뚫고 산을 올라야 진정한 산악인이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산을 올라가거나 스포츠대회에서 입상을 하거나 해봐야 사람을 흥분시키는데 필수적인 선혈이나 극심한 고통이 동원된 드라마틱한 요소가 없는 것이다.
예수와 붓다처럼 스스로 룰렛게임에 참여하여 긍극에 만나는 절벽의 끝인 절대무(絶對無)의 비현실세계에 도전해 사람들의 뇌리에 살아남는 산악인이어야 한다.
그러나 작금의 한국의 산악계는 룰렛게임을 벌려 자유로와진 산악인을 양성한 흔적은 없고, 스포츠를 흉내내어 그저 약간의 풍월과 재치 지혜를 개발한 정도에 불과하다고 본다.
산악인은 현실적인 사람들이 보면은 예수와 부처처럼 사이코이어야 한다.
산악인은 절대무의 비현실적 세계에 도전하여 절대 자유의 길을 개척하고 창조하여야 한다.
그런 산악인처럼 룰렛게임에 끼지는 못하지만 한 게임하고 싶은 충동질을 가지고 그들을 후원하는 사람들이 산악인이다.
후원하는 산악인들이 많이 참가하는 산악문화가 태동해야 한다.
그래야만 등산용품업체에 고용되고 후원받는 상업산악인들과 스포츠클라이밍대회에 참가하는 산악인들이 마음놓고 룰렛게임에 스스로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이번주 청송에서 월드컵아이스클라이밍대회가 열리고, 다음주에는 설악산에서 동계알파인포럼이 열린다고 하는데 스스로 룰렛게임에 참여하고자 하는 20대 진정한 산악인들의 양성이 필요한 싯점으로 발전하였으면 한다.
"산악판 지존의 자리라는 것은 인위적으로 해 봐야 사람의 영혼을 가지고 장난치는것 밖엔 아니다" 라는 말을 산악연맹은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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