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도시를 훌쩍 떠나고 싶은 충동이 있지만 막상 떠나보면 이런것이다.

나 또한 떠나 보았기에 이글이..

 

청량산이여, 안녕! 

 

 

햇볕 자랑자랑한 날에 멀고 가까운 산들이

울긋불긋하던 그 천자만홍(千紫萬紅)은 이제 빛을 잃어 간다. 

가을이 가고 있는 것이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숙연히 죽어간다는 숙살지기(肅殺之氣)의 서리가 내린지 오래,

이미 얼음이 얼고 산바람 윙윙거리면 정 붙일 곳 하나 없는 삭막한 산중이 된다. 

 

이처럼 처절한 쓸쓸함이 싫었다. 

이 산에서 겨울을 나기가 두려웠다.

너무 춥고 어설프고, 불편하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이 삭막하기 짝이 없는 환경과 싸워나가기에 너무 힘겹다고 느껴졌다. 

이미 헤어질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작은 아파트를 전세로 얻기로 하였다.

오래된 18평짜리 아파트이다.

내 나이 오십이 넘었어도 여전히 그 궁색한 셋방살이를 감당하며 유랑한다는 것이 한심하고 비탄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이외의 대안이나 선택지가 없는 한, 잘 한 결정이라 생각해야 한다.

이것이 잘못 하는 일이라면 어쩌나, 하고 미리 우려할 필요는 없다. 

되는 데로 흘러갈 뿐이라는 생각으로 살아갈 일이다.

완벽하려는 기대를 버리고 가끔은 일이 잘못될 수도 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어차피 인간으로 태어난 내가 스스로의 의지로 좌우할 수 있는 일이란 1%도 안 된다.

 

돌아보면, 처음 이 산으로 들어오던 때도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다른 길을 생각해 볼 수도 없었고, 또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더는 내가 어디로 이사할 필요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告別의 辯

 

  내가 인간사회를 떠나는 것은

  주눅 들고 시들어 피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서 내 너무 지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참에 사람들과 멀어지는 것은

  더 큰 자유와 의미를 찾아서다.

  나 본래 있던 곳으로 좀 더 쉽게 돌아가려 함이다.

 

  나는 몸 아픈 것 때문에 참으로 힘든 고통에 시달렸지만

  그것이 운명인 줄로 알았고

  한번도 그 운명을 탓한 적은 없으니,

  참으로 몸보다 더 아파 했던 것은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마음이었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 하였고

  부모, 가족, 아내, 친구, 이웃을 사랑하지 못 하였고

  아름답게 살지 못 했음이다.

  그럼에도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야 하는 것은

  구속이었고, 고통이었다.

 

  그래도 내가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우기는 것은,

  그곳이 본래 나 있어야 할 곳이기 때문이다

  그곳을 스스로 찾아가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 너무 아프게 살아왔기에

  이제는 스스로 떠날 것을 터득한 때문이다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과 어울려 살지 않는 것은

  내가 본래 우주의 한 티끌임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그것을 알고 살아가야만 의미 있기 때문이다.

 

  거기, 사람 흔적 없이 산과 구름만 있음에

  나는 한 마리 산짐승 되어

  뛰기도 하고 날기도 할 것이다.

  산에서 나는 풀을 먹고

  산에서 솟는 물을 마실 것이다.

  

  외로울까 두려워 말 것이니

  짐승은 외로움을 모르기 때문이다.

  차라리 외로운 것이 자유이기 때문이다.

 

  산짐승 되어 살면

  인간으로 살았던 아무 것도 추억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사람 아닐 수는 없으니

  때로 그리움은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의 한 산골 소년을 그리워 하고

  그 소년에게서 태어난 또 한 소년을

  죽는 날에도 못내 가슴에 묻고 갈 것이다.

 

  차라리

  못 만나고 그리워만 하는 것은

  그래서 더 아름다울 것이니.......          (2005. 5. 1)

 

 

그랬는데........

여러가지 불편을 자꾸 확대하여 느끼기 시작했다. 

택배를 받거나 가스통을 배달해 달라고 하는 일이 번번이 피곤했다.

내가 싣고 오면 되지만 그것은 무척 번거로운 일이었다.

혼자 살기에는 집이 너무 커서 수시로 청소하기에도 늘 고역이었다.

그러니 자연히 청소에 게을러졌다.

바깥은 정리를 못 하여 언제나 풀로 가득하고 집주변이 어수선하다는 것이 싫었다.

 

나 혼자서 그런 일을 다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은

내가 이미 이 산에 적합치 않은 사람이란 뜻이다. 

또 내가 세상과의 교류 때문에 차를 구입한 것은

이미 이 산에서 고독하게 살 명분을 얼마간 잃은 것이다.

내가 이 산을 떠나야 할 명분과 이유는 성숙되었다. 

 

산을 떠난다면 사람과 섞여 살아야 한다. 

국외자(outsider)가 제도권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혼자서 하던 것으로 진정 족하던 학문이지만

대학원을 다니고 박사라는 학위를 얻는 껍데기 공부도 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들이 만든 한심한 제도와 생각들에 맞추어 나가는 것이다.

 

왜 그래야 했을까?

나의 본성을 자각한 것이다.

내가 아무리 고도의 정신적 경지에 다다른다 하더라도

눈물을 이길 수 없으며 그리움에서 벗어날 수는 없음을 안 때문이다.

 

청량산의 삶은, 여러 어려움에 비해 좋은 점도 무척 많았다.

정말 좋은 곳이었다.

이 산에 와 어설픈 외딴집에 <운령재>라 현판을 써서 달고,

생의 한 때를 가장 고요하면서도 가장 치열하게 살리라 했었다.  

그리하여, 세상과 일정한 거리를 둔 채

거의 완벽한 나만의 공간에서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그것은 몸 자체가 옆에 아무도 없이 혼자라는 것 외에 마음과 정신의 자유를 의미했다.

 

때로는 샤워를 하고 나서 알몸 그대로 마당으로 나가

한참 동안 거닐며 자연바람과 햇살을 온몸으로 맞곤 했다.

몸의 사타구니와 은밀한 곳까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햇볕을 쬐고 바람을 쐴 수 있다는 것이 과연 이 세상에서 누가 가능하겠는가?

가족 한 사람이 있어도, 이웃사람이 있어도 그렇게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지나가는 사람이라도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몇 십 분의 길지는 않은 시간이지만 원시 인간의 자유를 저절로 맛보았다.

  

또한, 수십 만 평의 산과 계곡을 정원으로 삼고

눈만 뜨면 하늘과 구름을 바라보았다.

수시로 집 뒤의 가파른 고갯길을 산책했고, 숲 속을 헤매고 다녔다.

마루에 앉아 소리소리 고함을 치거나, 시조창을 하거나, 노래를 불러도

의식해야 할 누구도 없었고 시끄럽다고 간섭할 사람도 없었다.

정좌 수련을 하거나 붓글씨를 쓸 때는 새소리 이외에는 무엇도 나를 방해하지 않았고

특히 밤에 붓을 놀리거나 책을 읽을 때는 납덩이같은 침묵 속에서 삼매경에 빠질 수도 있었다.

과연 이런 시간들을 인생에서 맛볼 수 있는 때가 얼마나 될까?

그것은 참으로 소중한 것이었다.

 

그러한 거의 절대적인 자유에는 반드시 고독이 따르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고도(高度)의 자유(自由)일수록 그 고독(孤獨)의 깊이도 거의 완벽한 것이었다.

때로는 기둥에 세워둔 지팡이를 무슨 짐승이 그랬는지 저 멀리 내동댕이쳐 져 있고,

가축 한 마리 없는 집 주변에는 제법 큰 똥무더기가 가끔 눈에 띄기도 했다.

산책길에 멧돼지를 마주치면 저도 놀라고 나도 놀랐다.

한밤중에 혹시 바람이라도 불면

오동나무 잎 휩쓸리는 소리, 윙윙 지붕 위로 스치는 소리,

바깥 창이 덜컹거리거나 아니면 스윽스윽 밀어서 창문 여는 소리가 들릴 때는

원초적 두려움에 몸서리를 쳤다.

일 주일이 지나도 입 한 번 벙긋할 일이 없었던 날도 부지기수였다.

폭풍우가 며칠씩 무섭게 쏟아지는 어느 여름날에는,

앞산도, 마당 끝의 내리막길도 보이지 않은 채,

정말 온 우주 속에 나만 홀로 남아 있음을 절절히 체험했다.

사람으로 태어나 영화 같은 자유와 소설 같은 고독을 실제로 다 맛보게 해 준 산이다.

 

한편, 그러한 자유와 고독이라는 추상적 관념 이외에

현실적으로 나의 육신도 건강해졌다.

절대적 자유 속에서도 단전수련, 텃밭농사, 현미와 채식, 오후의 등산, 서예 등

1년이 하루 같은, 구도자로서의 철저한 절제와 규칙적인 일상이 있었다. 

특히 세상 일을 외면하고 인간에 대한 사랑과 배신을  다 잊고 지냈다.

 

당초 입산할 때의 절망과 체념에 비하면 

그나마 그 자유와 고독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여유를 얻었다.

한시, 경서 등 한학에 정을 두어 몰두할 수도 있었고,

수많은 생각을 하고 그 생각들을 나의 철학으로 형성시키며

수십 권도 넘을 수많은 글로 남기게도 되었다.  

 

  

회자정리(會者定離)라 했고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 했다.

인생이란 끝없이 만나고 떠나는 것이다.

이 청량산도 운령재도 떠나야 한다.

다만, 나는 이 산을 잊지 못 할 것이다. 

아침 해 돋기 전의 맞은편 청량산과 눈 아래 북곡 골짜기에 감돌던 안개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옅은 안개가 산허리를 넓은 띠처럼 감돌고 그 산 아래 골과 마을을 메우고 있다가

해가 돋으면 서서히 걷혀가던 그 안개.

마당 앞의 허공을 안개는 수증기처럼 맴돌기도 하고 흐르기도 했다. 

 

비온 뒤의 장관은 또 어찌 잊을까?

앞산을 배경으로 벌이는 운무의 향연을 넋을 잃고 바라보곤 했다.

산허리를 감도는 옅은 안개는

때로는 살 비치는 여인네의 고운 옷자락 같이 뭉쳤다가 꼬였다가 흩어지기도 했다. 

집 주변의 짙은 비구름은 세상과 경계를 지어 운령재를 별세계로 만들어 놓곤 했고........

  

 

 

 

 

 

 

 

 

 

 

 

 

 

 

 

 

 

 

 

 

 

 

나는 떠나더라도 이 운령재의 현판을 내리지 않을 것이다.

집이 언젠가는 벌레 먹고 썩어서 폐허로 변하겠지만,

나 죽은 뒤에도 영영 잊지 못 할 성역이 될 것이다.

이제 어느 날 또 떠나서 어디로 가서 살더라도 내게는 정착이 없을 것이다.

필요하면 얼마 동안 머물다가 때 되면 또 떠나겠지.

인생은 물처럼 흘러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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